2024 수가하라유적 (나라현 나라시) 나라시대 (8세기 중엽)菅原遺跡
수가하라유적 (나라현 나라시)
나라시대 (8세기 중엽)
교키(行基)의 연고지에 원형건물, 가장 오래된 다보탑일 가능성
수가하라유적은 헤이죠경(平城京)의 북서 구릉상에 위치한다. 구릉 정상에서 동쪽을 바라보면, 스가하라데라(菅原寺, 현 키코우지 喜光寺)와 헤이죠궁, 멀리로는 토우다이지(東大寺)까지 시야에 들어오는 절호의 입지이다. 1981년도 나라대학을 중심으로 한 수가하라유적조사회가 구릉의 계곡 안쪽 지점에 대한 발굴조사를 실시하여, 불당이라 생각되는 기단건물을 확인한 것으로 부터 교키가 키나이(畿内)에 건립한 사십구원「四十九院」의 하나인 「나가오카인(長岡院)」의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교키(668~749년)는 나라시대의 고승으로, 토우다이지 대불을 만드는 일에 종사했던 인물이다. 불당 발견 조사에서 39년이 지난 2020년도 택지개발에 앞서 구릉의 북측 정상부 2개 지점(북쪽 구역과 남쪽 구역)에 대한 발굴 조사를 실시하였다. 그 결과 남쪽 구역에서 평면 원형건물과 그 건물을 회랑과 담장으로 둘러싸 구획한 울타리 시설이 확인되었다. 출토유물로 보아 나라시대(8세기 중엽)에 건설된 것으로 추정된다.
원형건물은 크게 2종류의 유구로 구성되었다. 하나는 안쪽을 원형으로 둘러싼 비교적 대형의 비정형적인 평면 형태를 가진 토광군(내주토광열)이다. 내주토광열은 매우 얕고 바닥의 형태도 일정치 않다. 평면형태도 직선적인 부분이 있는가 하면 곡선을 이루는 부분도 있다. 또한 토광 바닥은 응회암편이 흩어져 있는 부분도 확인되었다. 이로 보아 기단을 장식하는 기단 외장이 아니라, 건물을 지탱하는 석재의 흔적으로 추정된다. 다른 하나는 내주토광열의 바깥쪽을 둘러싼 주혈군(외주주혈열)이다. 외주주혈열은 추정 16기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각의 기둥이 등간격의 원형으로 배치되어 있어 내주토광열과 다른 양상이다. 주혈은 직경 약 80cm이며, 주혈 내 기둥의 직경은 약 17cm로 가는 편이다.
간고지문화재연구소(元興寺文化財研究所)에서는 건축사 전문가와 함께 발굴조사에서 확인된 유구와 기와의 특징, 당시 건축물의 양상을 통해 원형건물의 복원을 시도하였다, 그 결과 평면원형의 벽체를 가진 하층건물 위에 평면방형에 소형의 기와를 얹은 상층건물이 있고, 주위에는 편백껍질 지붕(檜皮葺)을 얻은 부연이 돌아가는 다보탑 형태의 건축물로 추정하였다. 그러나 하층건물이 원형이며, 부연이 부속되는 등 현존하는 헤이안시대 이후의 다보탑과는 상이한 점이 많다. 또한 원형의 벽체와 부연을 수평방향으로 연결하지 못한 점 등 기술적으로 미숙한 부분도 추정되어 일본에 있어 보탑 건축의 초창기적인 모습으로서 평가도 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나라시대에는 평면이 원형인 건물은 지금까지 확인되지 않았으나, 원형처럼 보여지도록 지어진 팔각당이 있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건축물은 고인의 추선공양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원형건물도 같은 목적으로 지어진 것이라 추측된다. 2020년도 발굴조사는 수가하라유적이 나가오카인 이라는 추정을 보강했을 뿐 아니라, 나가오카인이 교키의 공양을 목적으로 한 점도 밝혔다.
수가하라유적은 9세기 초 무렵까지 유지 관리되고, 최종적으로 건물이 해체되었다. 교키의 화장뼈는 치쿠린지(竹林寺)에 있는 교키묘에서 발견되었다. 『대승상사리병기(大僧上舍利甁記)』에 기록된 교키의 묘지에는, 쿄기의 사리와 「다보지탑(多寳之塔)」의 밀접한 관계를 읽을 수 있어 이「다보지탑」이 공양과 매장을 겸하는 탑묘로서 기능했을 가능성이 있다. 수가하라유적에서 발견된 원형건물은 이 탑묘에 해당되는 것으로 보이며, 탑묘에서 매장지인 교키묘에의 변천이 스가하라유적 폐기의 배경에 있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村田裕介)

유적 전체(위가 북쪽)
원형건물은 구릉 정상의 평탄지에 위치한다. 서쪽으로 공한지가 보이는데 반해 동쪽의 평탄면은 성토하여 넓힌 뒤 건물을 세웠다.

유적 위치도
원형건물은 헤이죠경이조(平城京二条) 조간(条間) 남소로(南小路)의 서쪽 연장선상에 있다. 헤이죠경과의 위치관계도 고려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조사지역 위치도
조사지역 남쪽 구역 전체도
방형의 울타리 시설 중앙에 원형건물이 배치되었다. 회랑의 길이는 남북 추정 38.5m(내측 34.6m)이다. 원형건물 주위를 둘러싼 구획은 서쪽은 회랑인데 반해 동쪽은 굴립주 담장이다. 이는 원형건물에서 동쪽의 조망을 중시하였다는 것, 헤이죠경에서 원형건물을 쉽게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 추정된다.

원형건물
원형상의 내주토광열과 외주주혈열로 보아 다보탑상의 건물이 세워졌던 것으로 추정된다.
원형건물 복원도
내주토광열에 있던 것으로 추정되는 석재는 완공시에는 외관에서 보이지 않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 석재는 상부의 중량물을 지탱하였던 것으로 추정되며, 평면이 원형을 이루는 것으로 보아 원통상의 벽을 갖는 건물이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외주주열혈은 편백껍질을 이은 부연 지붕을 지탱하는 기둥으로 내주토광열상의 벽체 바깥쪽을 돌아가는 것으로 생각된다.
편백껍질 지붕
편백껍질로 지붕을 올리는 방식이다. 아스카시대에 기와 지붕이 시작되어 사찰 건물의 대부분은 기와지붕을 사용하게 되었는데, 헤이안시대가 되면서 국풍문화(国風文化)의 영향도 있어, 편백껍질 지붕이 가장 격식이 높은 공법이 되었다.
부연
사찰건축에서 건물 외부의 처마 아래 벽면에 설치한 차양상의 구조물이다.
소형 내림마루막새
1981년도 발굴조사시 불당의 기단 주변에서 출토되었다. 보통 크기의 3분의 2정도로 소형기와와 조합될 것으로 추정된다. 헤이죠궁내 출토품과 문양이 유사하여 헤이죠궁Ⅲ식이라 불려지는 형식에 포함되며, 헤이죠궁 기와 제작 공인이 관여하였음을 시사한다. 소형 내림마루막새는 6개체가 출토되었며, 모두 동일한 문양을 가진다. 세로 23.4cm, 가로 20.4cm, 두께 3.4c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