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쿠리하시슈쿠 관련 유적군 (사이타마현 쿠키시) 에도시대 전기~후기 (17세기 전엽~19세기 후엽) 栗橋宿関連遺跡群
발굴조사를 통해 통째로 되살아난 닛코가도(日光街道)의 역참마을
사이타마현(埼玉縣) 북동부에 위치하는 쿠리하시슈쿠 관련 유적군은 쿠리하시슈쿠유적(栗橋宿遺蹟)・쿠리하시슈쿠 혼진유적(栗橋宿本陣遺蹟)・쿠리하시슈쿠 니시혼진유적(栗橋宿西本陣遺蹟)・쿠리하시세키쇼 반시야시키유적(栗橋関所番士屋敷遺蹟)・키타2초메 진야유적(北2丁目陣屋遺蹟)으로 구성된다. 에도(江戸)와 닛코(日光)를 왕복하는 「닛코가도」의 역참 「쿠리하시슈쿠(栗橋宿)」와 관련한 유적으로, 토네강(利根川)의 도하점이나 관문에 접하는 중요한 역참이었다. 2012년부터 토네강의 제방확장 공사로 인한 발굴조사를 실시하여, 2023년에 모든 발굴조사가 종료되었다. 발굴조사 면적은 5만평방미터를 넘어 가도를 따라 남북700m이상에 걸쳐 있다. 조사범위는 가도에 접한 부분보다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간 마을 뒷쪽을 중심으로, 가도와 다이묘(大名)가 숙박한 본진(쿠리하시슈쿠 혼진유적)과 마을을 수호하는 신사인 고즈텐노우샤(牛頭天王社, 키타2쵸메 진야유적)도 포함된다.
발견된 유구는 에도시대 전기에서 메이지시대(明治時代) 이후까지 이르지만, 에도시대 후반(18세기 중엽~19세기 중엽)이 주를 이룬다. 폐기공으로 추정되는 토광이 많으며, 도자기와 목제품이 대량 출토되었다. 소토와 불탄 기와 등이 채워진 토광은 화재의 뒷정리 흔적으로 추정된다. 특히 19세기 초에 잇다른 화재로 큰 피해를 입었으며, 이후 부흥과 더불어 부지 경계을 나타내는 구획 시설이 정비된 것으로 보인다. 현재까지 이어지는 마을 구획은 이 무렵 완성된 것이다.
본진 부지 주변에서는 화재로 불에 타 폐기된 도자기가 많이 출토되어 세트를 이루는 긴접시, 구이접시, 뚜껑 달린 발, 소형 절구, 중국산의 자기접시 등 공들인 의장의 도자기가 많았다. 이 지역에 남아 있는 고문서에는 분세이(文政)5년(1822)의 화재로 조리도구를 포함한 식기류가 남김없이 불에 탔다고 기록되어 있어 그에 해당되는 자료라 여겨진다.
주변의 마을 유적에서도 열이 가해진 도자기 완과 접시가 세트로 출토되어 역참 음식에 사용된 식기류라 생각된다. 그 양이 방대하여 상업 공간으로 발달한 역참의 성격을 잘 보여주고 있다. 상업과 관련된 유물로는 「토라야(とらや)」・「이타야(板屋)」・「요시다야(吉田屋)」등의 가게 이름을 쓴 도자기가 곳곳에서 출토되었다.
역참이라는 성격 때문인지 지방에서는 보기 드믄 유물도 많이 출토되었다. 벨기에산의 연질 자기 접시와 중국제의 자기 제약병,「아사베니(淺紅)」라고 쓰여진 주홍색 안료 용기 등의 도자기류에 더해 유리제와 금속제의 머리 장식류・손거울도 다수 출토되었다. 토제 인형과 완구의 출토량이 많은 것도 특징이다. 질적 양적으로 풍부한 출토품은 에도시대 후기 역참을 왕래한 사람과 물건의 실태를 반영하는 자료라 할 수 있다.
근세의 역참마을로는 전국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대규모의 발굴조사로서 유물의 조성에는 본진과 마을의 성격차가 반영되어 있다. 또한 마을 안에서도 여관 구역에는 오래된 창고가 많은 점 등 직종이 반영된 유구와 유물이 확인되었다. 이후 역참마을의 연구와 복원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村山 卓)

역참의 구획시설(동쪽에서)
세로 방향 백색선 부분이 구획시설이다. 판자벽을 말뚝으로 지지하였던 구시설로 추측되지만, 대부분이 말뚝만 남은 상태로 발견되었다. 왼쪽 위의 ‘ㅁ’자형으로 파여진 구조물은 창고와 같은 중후한 건물의 기초로 추정된다.


유적 원경(남쪽에서)
쿠리하시슈쿠 상류에서 토네강(왼쪽)과 와타라세(渡良瀬)강(오른쪽)이 합류하여 치바현(千葉縣) 쵸시(銚子) 방면으로 남류한다. 제방 위의 국도4호선은 우측으로 꺽여 이바라키현(茨城縣) 코가시(古河市)로 들어간다. 닛코가도도 여기서 무사시국(武蔵國)에서 시모우사국(下総國)으로 들어간다.

발굴조사 지점 위치도

화재 후에 폐기된 도자기와 기와(쿠리하시슈쿠 혼진유적)
화재 폐기물을 버린 것으로 보이는 본진 부지내의 토광이다. 소토에 섞여 히젠(肥前)계 자기 접시 등의 세트 접시가 출토되었다. 쿠리하시슈쿠에서는 본진유적에서만 보이는 조합이다. 본진이 큰 피해를 겪은 분세이5년(1822)의 화재로 폐기된 것으로 추정된다.

칠기 완과 목제품 출토상황(쿠리하시슈쿠 니시혼진유적)
지하수위가 높아서 대지상에서는 부식되어 남겨지지 않는 목제품도 많이 남아 있다. 여관으로 추정되는 장소에서 칠기 완과 나막신이 많이 출토되었다. 묵서 문자 자료도 많다.

창고로 추정되는 건물 기초(쿠리하시슈쿠유적)
재이용된 나무통을 묻어 그 안팎을 자갈로 고정하는 공법으로, 위에는 창고가 만들어진 것으로 여겨진다. 이곳은 여관이 있던 구획으로 짓킨데(十錦手)라고 불리는 색이 화려한 중국산 도자기가 집중 출토되었다. 에도시대 후기.

히젠(肥前)계 자기 접시(쿠리하시슈쿠 혼진유적)
본진 부지내의 토광에서 출토되었다. 세트의 접시로 둥근접시 9매, 긴접시 10매이다. 본 유적군에서는 보기 드믄 디자인이다. 융착된 파편으로 보아 겹쳐진 상태로 보관된 것이 화재로 인해 깨진 것으로 추정된다. 오른쪽 앞쪽 긴접시 길이 20cm. 에도시대 중기(18세기 전반).

나베시마야키(鍋島燒) 채색 접시(쿠리하시슈쿠 혼진유적)
비젠나베시마번의 전용요에서 구워진 나베시마야키이다. 고급 도자기로 장군가와 다이묘가에의 선물로 사용되었다. 파편 4점은 모두 동일 개체로, 표면에 모란당초문, 뒷면에 칠보연결문이 그려져있다. 또한 표면은 적색과 녹색의 겉그림으로 칠해져 있다. 어떤 경위로 쿠리하시슈쿠에 들어왔는지 흥미로운 유물이다. 큰 파편 폭 8.5 cm. 에도시대 중기(18세기 전반).

중국 청대 자기 소완(쿠리하시슈쿠 혼진유적)
에도시대 후기에 문인들 사이에 인기였던 전차를 마시기 위한 차기이다. 중국 경덕진산으로 분채(粉彩)라는 기법으로 초록색으로 빛난다. 십금수(十錦手)라고도 불린다. 에도지역 이외에서는 거의 출토되지 않는다. 구경 6.8cm, 높이 4.2cm, 바닥 직경 2.6cm.

벨기에산 연질자기 접시(쿠리하시슈쿠 혼진유적)
중국의 비련이야기를 주제로 한 「윌로우 패턴」이라 불리는 동양취향의 문양이 그려져 있다. 뒷쪽의 명문으로 벨기에의 보흐 후레르 사에서 제작된 것으로 여겨진다. 여관 구획에서 출토되어 여관 소유물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구경 23.4cm. 에도시대 말기(19세기 중엽).

「보결문」

「淺」

「紅」
교토 시가라키(信樂)계 도기 배의 ‘淺紅’명(쿠리하시슈쿠 혼진유적)
‘淺’, ‘紅’이라고 쓰여진 배 100점 이상이 출토되었다. 문자와 함께 그려진 보결문(寶結文)은 『에도 카이모노 히토리 안나이(江戸買物獨案内)』에 게재된 아사쿠사의 가게인 ‘오시로이베니도이야 칸죠(白粉紅問屋諫藏)’의 상표와 일치되며 안료 그릇이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에도지역에서는 거의 출토된 바가 없어, 쿠리하시에서만 다량으로 발견되는 이유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구경 6.5cm, 높이 3.8cm, 바닥 직경 2.3cm. 에도시대 후기(18세기말~19세기 초).
마을에서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도자기(쿠리하시슈쿠 니시혼진유적)
닛코가도를 사이에 두고 본진의 맞은편에는 여관, 찻집 등을 포함한 마을공간이 있었으며, 그곳에서도 19세기 초의 화재로 폐기된 유물이 다량 출토되었다. 본진 출토품과는 달리 중형 접시, 뚜껑이 달린 완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