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위에 제방을 만들어 달린 일본 최초의 철도
니시키에(錦繪)에 그려진 축제가 눈앞에
사적 구 신바시 정차장지(舊 新橋停車場址) 및 타카나와 축제지(高輪築堤址)는 1872년에 신바시-요코하마(橫濱) 간에서 개업한 일본 최초의 철도유적이다. 1991년부터 실시된 발굴조사로 구 신바시 정차장과 플랫폼의 기초 등이 발견되었고, 1996년에 구 신바시 정차장지로서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신바시-요코하마 간 철도는 개업 당시에 현재의 타마치역(田町驛) 북쪽에서 시나가와역(品川驛) 남쪽까지의 2.7km를 바다 위에 제방을 만들어 그 위에 철로를 설치하였다. 이 제방을 타카나와 축제라고 한다. 종전에는 타카나와 축제는 파괴되어 남아 있지 않는 것으로 생각되어 왔는데, 2019년 시나가와역 개수공사에서 석축의 일부가 발견된 것을 계기로 제방 성토와 석축 등이 남북방향으로 길게 양호한 상태로 남아 있는 것이 밝혀지고 2021년부터 본격적으로 발굴조사가 실시되었다.
축제는 성토로 제방을 만든 다음에 양면을 석축으로 보강하는 구조이다. 석축은 바다측의 경사도가 30도이고 산측은 거의 수직으로 쌓았다. 바다측 석축 최하단에는 폭 90cm의 장방형 기반석을 두고 그 위에 한 변 50cm 정도의 절석(切石)을 쌓아 올렸다. 개업시의 축제는 상면 폭 6m 이상, 최하단 폭 17.5m, 높이 4m가 안되는 정도의 규모로, 철로는 단선이었다. 기저면은 해수면보다 1m 가량 낮은 바다 속에 있고 바다측 석축 전면에는 연약한 지반을 보강하기 위한 말뚝열이 박혀 있었다. 1876년 복선화를 위해 축제를 확장한 흔적도 확인되었다. 또한 절석을 쌓아 만든 교대(橋臺)가 발견되었다(제7교량). 이는 도쿄만으로 배를 내보내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생각되며, 이 다리 위를 증기기관차가 달리는 모습이 니시키에(錦絵, 목판화)에도 다수 그려졌다. 이 외에 바다측 석축 위에서는 열차용 신호기를 세우기 위한 토대로 추정되는 돌출된 석축이 발견되었다.
일본의 근대화를 전하는 철도유구
현재까지 타카나와 축제의 발굴조사에서는 쌍두(雙頭)레일과 레일을 지탱한 침목(枕木) 등이, 구 신바시 정차장의 발굴조사에서는 우표와 개찰가위 등이 발견되었으며, 그들을 통해 일본 최초의 철도가 부설된 무렵의 상황을 엿볼 수 있다.
현재 구 신바시 정차장은 JR 신바시역과 특별명승 및 특별사적인 구 하마이궁 정원(舊 濱離宮庭園) 사이의 거대 복합도시 ‘시오도메(汐留) 시오사이트’의 일각에 역 건물과 플렛폼이 복원되어 있다. 타카나와 축제지의 발굴조사는 2022년 4월 현재 진행중인데, 현재까지의 조사 결과 축제의 내부 구조와 구축 방법이 밝혀지고 있다. 이 성과는 일본에서 교통의 근대화와 토목기술 등의 역사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중요하기 때문에 종전에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었던 구 신바시 정차장에 더하여 새로 발견된 타카나와 축제의 일부를 2021년 추가적으로 ‘구 신바시 정차장지 및 타카나와 축제지’로서 사적으로 지정하였다. (平河内毅)
타카나와 축제의 제7교량 교대부
축제에 설치된 교량으로 신바시에서 출발하여 7번째 다리이다. 도쿄만으로 배를 내보낼 때 항로를 확보하기 위해 설치된 것으로 여겨진다. 교대 사이의 폭은 6.8m이다.
하늘에서 본 타카나와 축제
구 타카나와 해안의 해안선을 따라 완만하게 곡선을 이룬다. 사진 안쪽이 시나가와 방면이다.
신호기 토대부(동쪽에서)
중앙에 보이는 높은 석축이 토대이다. 시나가와 정차장에서 신바시 방향으로 900m 지점에 있다. 신호기는 신바시-요코하마 간에 16곳이 설치되었다.
타카나와 축제의 내부구조(모식도)
축제의 중앙 최하단에 경질점토를 깔고 그 위에 실트질의 흙을 덮어 심재(芯材)로 하였다. 바다측(동쪽)은 특히 단단하게 점토, 롬토, 보강석 등을 단계적으로 쌓은 뒤, 석축 역시 단계적으로 쌓아 올렸다. 산측(서쪽)에서는 확장시의 성토와 석축도 확인되었다.
기차 토병
역에서 판매하는 도시락과 함께 팔던 차 용기이다. 철회(鐵繪)로 기차가 그려졌고 뒤에 ‘福’의 글씨가 있다. 구 신바시 정차장에서 출토되었다. 주구부를 포함한 최대 직경이 12cm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