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구우 시모혼마치유적 (와카야마현 신구우시) 헤이안시대 말기-무로마치시대(12세기말-16세기 전엽) 新宮下本町遺蹟(和歌山縣 新宮市) 平安時代末期~室町時代(12世紀末~16世紀前葉)

쿠마노 신앙(熊野信仰)을 지탱한 중세 해상교통의 거점

쿠마노천(熊野川)을 따라 배치된 다양한 구조의 지하식 창고

 신구우 시모혼마치유적은 키이반도(紀伊半島) 남동부를 흐르는 쿠마노천 하구에서 약 2km 상류 우안의 자연제방 상에 입지한다. 신구우는 태평양을 왕래하는 해상교통의 요충지로, 바로 인근에는 사적 쿠마노 삼산(熊野三山)의 하나인 쿠마노 하야타마대사(熊野速玉大社)가 모셔져 있으며 그 문전 마을로 발전하였다. 신구우시에서는 2015년 이래 몇 차례에 걸쳐 본 유적의 발굴조사를 실시하여 죠몽시대부터 근세에 이르는 유구와 유물을 확인하였다. 특히 주목되는 것이 중세의 항구와 관려된 유구이다. 선착장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으나, 쿠마노천에 면하는 입지와 창고군의 존재로 보아 중세 항구도시의 일부로 추정된다.

 확인된 유구는 굴립주건물, 방형 수혈건물, 석단통로(石段通路), 돌담장, 단야유구 등이 있다. 그 중에서도 항구도시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지하식 창고로 생각되는 방형 수혈건물이 30기 이상 발견되었다. 모두 한 변 2-3m의 규모로 굴립주, 토대, 석축 등 다양한 구조를 지니고 있다. 이러한 구조 차이는 각각이 만들어진 시기 차이를 나타내며 15세기가 되면서 세가지 타입이 모두 만들어졌다.

 쿠마노천에 가까운 유적 북쪽은 15세기 이전에는 아직 강으로 내려가는 사면이 정비되지 않았으나, 지하식 창고가 가장 많이 축조된 15세기가 되면 사면지에 석축을 만들어 단상으로 부지가 조성되었다. 강으로 내려가는 석단통로가 만들어지고 단상 부지에 복수의 지하식 창고가 강을 따라 건설되는 등 계획적으로 도시가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유적 북동부의 단상 부지에는 단야유구가 밀집되어 있으며, 배못이 출토되는 것으로 미루어 배 수선 등이 이루어진 것으로 여겨진다. 이러한 유구 배치는 계획적으로 정비된 중세 항구도시의 모습을 상기시킨다.

동서 각지와의 교류를 나타내는 다수의 유물

 출토유물은 수입 도자기, 토코나메야키(常滑燒), 세토야키(瀬戸燒), 비젠야키(備前燒), 하지키(土師器) 냄비(남이세계 南伊勢系, 하리마형 播磨型), 야마자완(山茶碗), 와기(瓦器) 등 다양하며 키이반도를 중심으로 한 동서 각지와의 활발한 교류를 나타내고 있다. 또한 세토야키의 촛대와 화병, 동제 육기완(六器碗, 밀교 법구의 하나로 6개 한 세트) 등의 종교 관련 유물이 출토되었으며, 쿠마노 하야타마대사를 비롯한 신사와 절과의 밀접한 관계를 엿볼 수 있다. 중세에는 쿠마노 신앙이 융성하여 쿠마노 장원(荘園)이 전국으로 확대되었다. 각지의 쿠마노 산령(熊野山領)에서 장원미(荘園米)가 반입되면서 수운이 발달되며 쿠마노 삼산의 재정을 지탱하였다. 본 유적에서 확인된 항구 관계 유구는 그러한 물류의 실태를 나타내고 있다.

 이와 같이 신구우 시모혼마치유적은 중세 항구도시의 구조를 이해할 수 있고, 종교 세력의 융성을 배경으로 한 중세시대 태평양 교통의 실태를 해명하는데 있어서 귀중한 유적이다. (小林高太)

유적 원경(북서쪽에서)

유적 원경(북서쪽에서)

유적의 동쪽으로 탄카쿠산(丹鶴山)이라 불리는 소구릉이 쿠마노천에 뻗어 있어 풍파의 영향을 받기 어려워 항구로 적합한 지형을 이루고 있다.

유적 위치도

유적 위치도

유적의 바로 남쪽에 쿠마노 하야타마대사와 아스카왕자지(阿須賀皇子址)을 잇는 쿠마노 참배길이 지나고 있다. 쿠마노 하야타마대사까지 불과 0.5km이다.

유적 위치도

유적 전체도 (번호는 사진과 대응)

1 Group of warehouses (from the west)

창고군(서쪽에서)

쿠마노천에 면한 단상 부지에 줄지어 건설되었다. 원주 모양은 조사 전에 있던 초등학교의 기초말뚝 이다.

9 White porcelain jar with four handles

백자사이호

중국제로 이부(耳部)에 ‘李丁’이라는 각명이 있다. 높이 32cm이다. 카마쿠라시대(鎌倉時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