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석기시대 (森先一貴)
지역색이 풍부한 수렵채집민의 문화
카나가와현 이세하라시(神奈川縣 伊勢原市) 니시토미오카・나가타케유적(西富岡・長竹遺蹟)에서는 후기 구석기시대가 끝나는 무렵에 발달되는 첨두기와 세석인을 활발하게 제작했음을 보여주는 석기군이 발견되고 있다. 첨두기는 석기를 정교하게 가공해서 만든 나뭇잎 모양의 창끝이고, 세석인은 면도칼과 같은 석기로 뼈나 나무 등으로 만든 자루에 끼어 창이나 칼로 사용하였다. 관광지로서도 유명한 오오야마(大山) 기슭에서 다양한 도구를 용도에 따라 만들어 사용하던 약 2만년 전 수렵인들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
에히메현 이요시(愛媛縣 伊予市) 타카미Ⅰ유적(高見Ⅰ遺蹟)은 2017년에 발굴조사되고 2019년에 그 성과가 공표되었다. 세토우치(瀬戸内) 서부의 시코쿠(四國)측에서는 구석기시대의 유적의 발견예도 적으며 그 규모도 협소하지만, 이 유적에서는 수천점의 석기가 역군(礫群)이라고 불리는 조리시설과 함께 출토되어 중요한 발견이라 할 수 있다. 석기는 큐슈와 킨키에서 흔히 보이는 형태로 그들 지역의 문화적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있다.
진전되는 구석기시대 유적의 보호
최근 구석기시대부터 죠몽시대 초창기 유적에 대한 보호가 진전되고 있다. 치바현 시스이마치(千葉縣 酒々井町)의 스미후루사와유적(墨古沢遺蹟)은 후기구석기시대(약 40,000~15,000년전) 초기 무렵에 조영된 대형 환상취락이다. 수 많은 환상 취락 가운데 전체 모습이 밝혀진 유일한 현상보존 사례로 2019년에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마찬가지로 사적으로 지정된 오키나와현 이시가키시(沖繩縣 石垣市) 시라호사오네타바루 동혈유적(白保竿根田原洞穴遺蹟)은 석회암 동혈의 벽측에 시신을 안치하여 풍장을 실시한 약 30,000~20,000년 전의 묘지 유적이다. 많은 인골이 발견되었으며 독특한 장법를 알 수 있는 유적의 첫 사례이다.
죠몽시대 (斉藤慶吏)
토호쿠지방 남부의 칠기문화에 새로운 인식
후쿠시마현 가와마타마치(福島縣 川俣町)의 마에다유적(前田遺蹟)에서는 국도 정비공사에 따라 2018년부터 발굴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2018년도에 죠몽시대 만기(약 2800년전)의 저장공군과 죠몽시대 중기말(약 4100년전)의 수로를 발견했고, 2019년도에는 죠몽시대 중기-만기의 수혈건물과 토기매설유구를 조사하였다.
수혈건물은 죠몽시대 중기말에 해당되는 것이 많으며, 복수의 화덕을 가지는 ‘복식노’가 설치되었다. 또 나무열매를 비축한 죠몽시대 만기의 저장공 약25기가 발견되었으며, 그 내부에서 도토리가 집중적으로 출토되었다. 유아를 매장한 무덤으로 추정되는 토기 매설유구는 동서 15m, 남북 10m의 범위에 30기 이상이 분포하며, 이 가운데 1기에서 유아의 것으로 추정되는 두개골 일부가 출토되었다.
용수가 흐르는 수로에서는 죠몽시대 중기 후엽에 해당되는 대량의 토기・석기와 함께 도끼자루와 활, 발화구 등 다양한 목제품이 출토되었다. 수피를 엮어서 만든 바구니와 깔개 등도 다량으로 출토되었고, 호두・도토리・밤・칠엽수 등의 나무열매 껍데기 및 동물뼈가 발견되었다. 이들은 당시 삶의 실체를 해명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정보이다. 또한 옻을 칠한 용기와 장신구가 많이 출토되었다. 지금까지 토호쿠지방에서는 죠몽시대 중기에 해당되는 옻칠 관련 자료의 발견이 적었기 때문에 조사 성과가 주목되고 있다.
킨키지방에서는 보기 드문 물가 작업장
교토부 죠요시(京都府 城陽市) 미누시신사히가시유적(水主神社東遺蹟)에서는 2017년부터 발굴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2019년도 조사의 결과 수로지에서 물을 이용하기 위해 만들어진 죠몽시대 만기(약 3000년전)의 목조유구(木組遺構)와 목도(木道), 말뚝열이 발견되었다.
목조유구는 길이 2.3m, 폭 0.7m로 통나무 목재와 자른 목재를 세로 방향으로 설치하고 횡목을 올린 다음에 단변에 몇 개의 말뚝을 박아 고정하였다. 목도는 길이 3.5m, 폭 0.4m의 범위 내에 분할한 통나무 목재를 깔았으며 목조유구로 이어지는 통로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수로 중앙 부분에는 길이 4.2m 이상의 목재와 말뚝열이 발견되었다.
이들은 수로와 병행하여 설치되었는데 유수를 이용하여 식료와 목재 등을 가공하는 작업이 실시되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유적 주변의 구릉상에는 죠몽시대 후기의 수혈건물군이 확인된 모리야마유적(森山遺蹟) 위치하고 저지부에는 죠몽시대 후기~만기에 해당되는 시모미누시유적(下水主遺蹟)과 코히지리유적(小樋尻遺蹟) 등이 펼쳐져 있다. 이와 같은 종류의 유구는 동일본을 중심으로 많이 발견된 바 있는데 최근에 들어서 킨키지방(近畿地方)에서도 잇따라 확인되고 있으며, 서일본의 죠몽시대 취락상을 재검토하는데 새로운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미누시신사히가시유적의 목조유구(제공: 공익재단법인 쿄토부 매장문화재조사연구센터)
야요이시대 (川畑純)
야요이시대의 벼루, 잇따라
‘발굴된 일본열도 2019’에서도 소개한 바 있는 야요이시대 벼루에 대한 추가적 정보가 들어왔다. 야요이시대 사람들은 자유자재로 문자를 사용하였는가. 벼루의 존재는 이와 같은 큰 문제를 해결할 물증이 된다. 금번 석연(石硯)과 연석(研石, 숯을 갈기 위한 도구)이 ‘발견’된 것은 일본을 대표하는 야요이시대의 대규모 취락인 사가현 칸자키시 요시노가리쵸(佐賀縣 神埼市 吉野ヶ里町)의 특별사적 요시노가리유적(吉野ヶ里遺蹟)이다. 자료는 과거의 출토품을 자세하게 확인하고 정리하는 과정에서 발견된 것으로, 이로 인해 아리아케해(有明海) 연안지역에서도 야요이시대에 문자가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 외에도 각지 출토품에 대한 재검토로 벼루의 가능성이 있는 유물들이 속속 ‘발견’되어 야요이시대 연구는 공전의 벼루 붐을 맞이하고 있다.
일본의 원풍경?
나라현 고세시(奈良縣 御所市)의 나카니시유적(中西遺蹟)에서는 야요이시대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 드넓은 수전 경관이 드러났다. 지금까지 확인된 범위를 모두 합하면 43,000㎡에 달하는 광대한 면적으로, 논농사 기법이 전래된지 얼마 되지 않은 야요이시대 전기(약 2,500~2,400년전)의 사례로서는 전국 최대급의 규모이다. 수전은 폭 30cm 가량의 작은 논두렁으로 조밀하게 구획되었으며 경사 지형을 교묘하게 이용하여 물이 논두렁을 넘어 널리 퍼지도록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수전 진흙에는 야요이인들의 발자국이 뚜렷하게 남아 있으며 널리 펼쳐진 논에서 많은 사람들이 농작업에 종사한 일본의 원풍경을 엿볼 수 있다.
군립하는 환호취락이 밝혀져
시마네현 마츠에시(島根縣 松江市)의 사적 타와야마유적(田和山遺蹟)은 신지호(宍道湖) 동쪽에 조영된 환호취락으로, 산정 부분을 목책과 삼중 환호가 둘러싸고 있고 그 바깥에 거주구역이 펼쳐져 있다. 또한 타와야마유적에서 북쪽으로 불과 약 500m 떨어진 지역에서 지고데유적(神後田遺蹟)이라는 환호취락이 새로이 확인되고 있다. 발굴조사 결과 단면이 Y자형인 환호가 발견되었고, 환호로 둘러쌓인 내부에서는 수혈건물 등도 확인되었다. 이는 타와야마유적이 환호 내부에서는 거주 구역이 확인되지 않는 점과 대비되는 양상이다. 두 개의 취락은 야요이시대 전기에 동시에 존재했던 것으로 밝혀져 상호 관련성이 주목되고 있다.
▲나카니시유적의 야요이시대 전기 수전 전경(제공: 나라현립 카시하라고고학연구소)
고분시대 (藤井幸司)
종말기의 양상 신발견
고분시대의 중심인 야마토(大和/현재의 나라현)에서는 종말기고분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져 향후 연구의 진전을 기대할 수 있는 발견이 있었다.
2014년에 발견된 나라현 아스카무라(奈良縣 明日香村)의 코야마다고분(小山田古墳)은 7세기 중엽에 축조된 한 변 70m의 대규모 방분으로 분구 북변은 판석을 쌓아 만들어졌음이 밝혀졌다. 2018년의 조사에서는 분구 남변 길이가 80m에 달하는 점과 분구 서변 역시 판석을 쌓았음이 드러났다. 또한 고분 축조 후에 바로 분구 서변의 판석을 제거하여 토기관묘를 설치한 것이 확인되어 고분 축조 후의 이용 상황이 밝혀졌다.
나라현 카시바시(香芝市)의 사적 히라노츠카아나야마고분(平野塚穴山古墳)은 7세기 후반에 축조된 횡구식석곽을 가진 한 변 20m 이상의 방분이다. 최근의 발굴조사로 분구 사면에 니죠산(二上山)에서 나는 응회암을 사용한 첩석(貼石)과 횡구식석곽 석재에 마련된 ‘지렛대 구멍’이 발견되었다. 이는 주로 왕릉급 고분에 보이는 특징으로 히라노츠카아나야마고분의 피장자를 추정하는 데 있어 중요한 발견이다.
전기 취락에서 수장거관(首長居館)으로
오오이타현 우사시(大分縣 宇佐市)의 코베유적(小部遺蹟)은 남북 약 120m, 동서 100m 이상에 달하는 두 개의 돌출부가 있는 환호취락이다. 우사시 교육위원회에 의한 2019년의 발굴조사로 고분시대 전기 초에 형성된 환호취락으로 환호의 내부에 방형구획을 하고 그 안에 대형 굴립주건물이 지어졌음이 드러났다. 또한 대형 굴립주건물이 만들어진 시기가 인접하여 있는 사적 카와베・다카모리 고분군(川部・高森古墳群)의 아카츠카고분(赤塚古墳)과 동시기인 점도 주목된다. 코베유적의 발견은 전기의 취락에서 수장거관이 형성되는 과정에 대한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는 동시에 북부큐슈에 있어 고분문화가 어떤 과정으로 수용되는가를 알 수 있는 중요한 발견이다.
속죠몽문화(續繩文文化)와 고분문화의 접촉
고분시대의 토호쿠북부와 홋카이도는 전방후원분을 대표로 하는 고분문화가 아니라, 죠몽문화와 동일한 양상의 어로와 수렵을 생활의 기반으로 하는 속죠몽문화가 전개되고 있었다. 아오모리현 시치노헤마치(青森縣 七戸町)의 이노하나(1)유적(猪ノ鼻(1)遺蹟)에서는 고분시대 전기에 병행하는 4세기의 토광묘 6기가 발견되었다. 이 중 4기에서는 속죠몽문화 토광묘 특유의 주혈 형태의 구멍이 설치되었으며 속죠몽토기 이외에 하지키(土師器), 도자, 유리구슬 등이 출토된 것에 비해, 나머지 2기에서는 주혈 형태의 구멍이 설치되지 않았고, 하지키, 벽옥제 관옥・녹색응회암제 관옥・호박제 환옥 등의 구슬류가 출토되었다. 주혈 형태의 구멍 및 속죠몽토기와 같은 속죠몽문화의 요소와 하지키나 구슬류와 같은 고분문화의 요소가 병존하고 있는 양상으로, 속죠몽문화인과 고분문화인 사이의 교류가 있었던 것을 보여준다. 이와 같은 고분시대의 일본열도에서 동시기에 발달한 다양한 문화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고대 (森先一貴)
미발견의 고대관아인가
코치현 난코쿠시(高知縣 南国市)의 와카미야노히가시유적(若宮ノ東遺蹟)에서 고대 관아 관련 시설로 추정되는 유구가 발견되었다. 이 유적은 난코쿠시 교육위원회와 코치현 매장문화재센터가 각각 수년간에 걸쳐서 발굴조사를 실시하였다. 그 결과 대형 굴립주건물과 구획담장, 창고로 추정되는 총주(總柱) 굴립주건물군 등이 확인되었다. 대형건물은 7세기 후반에 만들어진 것으로 기둥구멍의 한변이 1m이상, 기둥직경은 약 30cm, 기둥과 기둥간의 간격도 3m로 넓어 코치현내에서 최대급 건물이다. 당시의 행정단위인 효(評)의 관청을 구성하는 높은 위상을 가진 건물로 추정되며, 그러한 경우 창고군은 정창(正倉)으로 보인다. 고대 관료가 상용한 것으로 보이는 허리띠장식인 ‘순방(巡方)’이 2019년도의 조사에서 출토되어 이 건물군이 관아 관련 시설일 가능성을 시사한다.
궁도(宮都) 주변에서의 잇따른 발견
최근 고대 궁도 주변에서 새로운 발견이 이어지고 있다. 쿄토시(京都市)에는 헤이안시대(平安時代)부터 오늘날까지 불이 꺼지지 않는 토우지(東寺)라는 유명한 사찰이 있다. 토우지와 함께 건립된 사이지(西寺)의 유적인 사적 사이지지(西寺址)에서 5층탑의 기단으로 보이는 유구가 발견되었다. 건립 당시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며 헤이안경(平安京)에서 최대급의 규모를 자랑하는 건물이었음을 알 수 있다. 옛날에는 헤이안경 정면에 2개의 오층탑이 나란히 서 있었음을 말해준다.
나라현 요시노쵸(奈良縣 吉野町)의 사적 미야타키유적(宮瀧遺蹟)에서도 고대의 천황과 관련된 발굴조사 성과가 드러나고 있다. 이 유적은 메이지시대부터 존재가 알려졌으며 ‘일본서기(日本書紀)’와 ‘속일본기(續日本紀)’ 등에 기록된 요시노노미야(吉野宮)일 가능성이 지적되었다. 이번에 카시하라(橿原)고고학연구소와 요시노쵸에 의한 발굴조사로 대형 굴립주건물이 정연하게 배치된 상황이 밝혀져 종전의 이궁(離宮)설이 뒷바침되고 있다.
나라현 카시하라시(橿原市)에 위치하는 특별 사적인 후지와라궁지(藤原宮址)에서는 흥미로운 신발견이 있었다. 천황을 중심으로 한 정치・의례의 장소인 대극전(大極殿)을 둘러싸는 구획을 대극전원(大極殿院)으로 칭하는데, 지금까지 후지와라궁 대극전원에는 대극전 이외의 건물은 없었던 것으로 추정되어 왔다. 그러나 최근에 대극전 북쪽을 둘러싸듯이 만들어진 내부 구획을 위한 회랑(초석건물의 이중회랑)이 있었음이 새로 밝혀졌다. 새로 발견된 회랑은 후지와라궁과 규모 및 구조가 유사한 오사카시(大阪市)의 전기 나니와노미야(前期難波宮)와 흡사하다. 이 발견은 두 유적의 관련성과 역대 궁전의 구조 변천을 연구하는데에 있어 큰 성과라 할 수 있다.
중세・근세 (近江俊秀)
중세・근세 성관(城館)에의 관심
최근에는 특히 중세・근세 성관에 대한 조사가 활발하다. 2019년도에도 전국 각지에서 성지의 보존과 활용을 목적으로 한 발굴조사가 계속되고 있다. 그 중에는 숭푸성(駿府城)이나 특별사적 히메지성(姫路城) 등 전국적으로 잘 알려진 성 뿐만 아니라, 사적 마츠에성(松江城)이나 사적 타카마츠성지(高松城址) 등 전국시대부터 막번체제(幕藩體制)하의 다이묘의 거점성, 그리고 중세 성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성에 대해 고고학적 조사가 이루어졌다. 그 결과 각각의 성과 그 지역, 그리고 일본사와 관련되는 새로운 자료가 밝혀지고 있다.
재해로 인한 새로운 발견
최근 해마다 일본 열도에 대규모 재해가 덮치고 있다. 이러한 재해들은 귀중한 문화재에도 심각한 피해를 끼치고 있으나 복구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발견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복구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특별사적 쿠마모토성지(熊本城址)의 이이다마루 고카이야구라(飯田丸 五階櫓)에서는 카토 키요마사(加藤清正)에 의한 축성 당시의 돌축대가 발견되었다. 2016년의 쿠마모토 지진에서는 불과 한 줄의 축대가 복원된 누각을 지탱하는 상황이 주목되었는데, 복구 작업에 따른 축대 해체에서는 안쪽 8.5m 지점에서 그 이전에 만들어진 또 다른 축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 축대는 1615년 경에 누각의 토대인 축대가 확장되면서 매립된 것으로 약 400년 만에 모습을 드러낸 셈이다. 재해복구라는 기간적・기술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이루어진 발굴조사로 쿠마모토성의 역사의 일단이 밝혀지고 있다.
▲특별사적 쿠마모토성지에서 약 400년만에 모습을 드러낸 돌축대
해체수리에 따른 돌축대의 발견
오키나와현 나카구수쿠손(沖繩縣 中城村)에서는 2016년도부터 사적 나카구수쿠성지(中城城址)의 돌축대에 대한 해체수리를 실시하고 있다. 이 수리 과정에서 현재의 성벽(19세기 후반~20세기 전반) 안에서 축성 당시의 돌축대가 발견되었다. 이 돌축대는 출토된 도자기로 미루어 14세기 전반에 해당되는 것으로 추정되어 현재까지 문헌사료 등의 근거로 14세기 후반이라 여겨졌던 축성 시기가 반세기나 거슬러 올라가게 되었다. 오랫동안 햇볕에 노출되지 않았던 축대는 주위의 축대에 비하여 희고 작지만 세밀하게 가공된 절석(切石)이 꼼꼼하게 쌓여 있어 구수쿠(グスク/오키나와의 성곽)의 성립과 당시의 축성기술, 그리고 구수쿠의 변천을 알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성과이다.